1편에 이어.
두 군데에서 부름을 받았던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기로 했다. 당시 나의 계약은 1월까지였다.
프랑스인 매니저 (3)편에 나왔듯이, 난 적어도 계약기간을 마무리 짓고 옮기려 했고, 체류증이 연장되면 동거인 비자(PACS)를 얻을 계획이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연락온 곳 중에서, 회사이름으로나 내 전공 그리고 내 커리어를 모두 이어갈 수 있는 곳은 두번 째, 그곳 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아무것도 약속 받은 것은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 면접을 다시 봐야만 했기에 간절했다. 동거인 비자 심사는 이미 랑데부를 잡아놓은 상황이었고 (그게 2월ㅠㅠ 시부레) 깔끔하게 계약이 끝나면, 깔끔하게 체류증을 얻고, 다시 팀장에게 연락해서 깔끔하게 이직 준비를 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가장 먼저 면접을 봤던 A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다시 연락이 오리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나도 잠시 잊었다) 이번에는 스토어 매니저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매니저 면접(3차)을 보자는 제안이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성 속에서 나는 최저등급?이라도 만들어 보기 위해 채비를 했다. 매니저 2명이 나를 반기었고, 우린 늘 같은 방에서 면접을 진행했다. 내 소개가 끝나자, 매니저 2명도 소개를 한다. 지난 번 디렉터 아저씨와의 면접과는 활기가 있었고, 그들이 항상 내게 말끝마다 강조했던 <친근하게> 가 그나마 전해지는 듯했다.
서론이 끝나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게 다소 인텐스한 질문을 던졌다. "왜 여기로 이직을 하고 싶어해?" "우리 패션 어디에 영감을 받았지?" "가장 좋아하는 우리 제품은 뭐야?"
어딜가나 리테일 면접은 항상 이렇다. 좋아하는 물건이 있어야 그걸 팔 수 있지 않겠냐는 이론들. 미처 준비못한 질문에 난 잠시 당황했지만, 기억나는 클래식 제품군을 말했고, 그들이 서울 플래그 쉽을 만들 때 봐둔 패션쇼 영상을 본 내 감상을 이야기했다.
내 표현이 다소 방대하진 않았지만, 내 말에 귀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던 두 사람은 한 가지 테스크를 주었다.
"너, 지금 너가 그 가방을 판다고 생각하고, 내게 팔아봐."
젠장. 염려했던 롤플레잉 면접 되시겠다. 매니저 한 명이 자신의 가방을 올려 놓더니, 한번 해보라고 한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난 지금 내가 일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판다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그렸다. 이따끔씩 제품 소재나 디테일한 단어가 기억안나자 그녀는 내게 영어로 해도 괜찮다고 했다.
3분 여간 그렇게 현기증을 안겨준 질문에 답을 하자. 둘이 신호를 주고 받는다. 그녀가 입을 먼저 열었다. 전부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앞서 말한 지원동기를 지적하려는 듯 했다. 나는 파리지앵들이 브랜드의 명확한 아이덴티티, 정체성과 메시지에 힘 입어서 그들만의 트렌드로 재해석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달랐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먼저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비교하는 거야.
'패알못'인 나는 가만히 난 듣고만 있었다. '아무렴 그러시겠지요' 마무리는 역시나 질문이 있는 지를 묻는 거였고, 나는 지난 번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물건을 어떻게 해야 잘 판다고 생각하세요?'
단순하면서도 쉽게 답하긴 어려운 질문이다. 정답이 없으니까 당연히. 그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더니, 장황한 말을 이어갔다. "세일즈를 잘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지식이 있어야하고 (중략) 직원 스스로가 앰버서더가 되는 노력을 해야하고 (중략)" 예상한 답변이지만, 조금 길어지니 나도 잠자코 듣으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노잼 면접이 끝나자, 난 한편으로 결심했다. <리테일을 벗어나려면 리테일은 이제 쳐다도 보면 안될 것 같다> 항상 같은 실수를 하는 기분이 들었고, 성장은 커녕 불만만 늘어가는 꼴이 우스웠다.

배운 게 도둑질이야.
이직을 할 때마다 생각나는 그분의 명대사.. 더 이상 쓸데 없는 것에 힘을 빼지 않기로 한 나는 조금 더 진지하게 회사를 찾기로 했다. 링크드인 페이지 절반을 차지한 리테일, 명품사, 패션은 지웠고, 내가 적어도 더 배울 만한 곳을 찾기로 했다.
더 영양가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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