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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프랑스 외노자 면접 썰 (1)

by 서마르코 2025. 5. 21.

 

 
일을 하던 6개월 차, 몇 군데서 연락을 받았다. 아직 크리스마스 전이었고, 한국 회사의 채용이 비교적 원활하지는 않을 때였다. 
 
매니저의 마이크로 매니징에 실망한 내가 A사 브랜드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시니어 포지션이었고, 그래도 내실있는 프랑스 브랜드이다보니 나도 이번에는 정말 무언가 배워볼 마음이 컸다. 그렇게 랑데부를 잡고, 면접 안내를 받았다. 
 
프랑스에서 보통 첫 면접은 HR팀과 간단한 소통?이다. 한국의 외국계 회사들이 그러하듯, 이곳에서도 면접은 1대1 또는 1대 다수 면접이 거의 흔하다. HR과의 미팅은 대개 나의 이력서를 하나 하나 체크하고, 약간의 경험담 또는 역량을 물어보는 편이다. 
 
난 이전 한국직장이 명품사였고, 그래도 프랑스 브랜드였던지라 덕분에 프랑스 리테일 관련 헤드헌터에게서는 가끔 연락을 받고 있었다. 주된 질문은 그래서 대개 무얼을 했는지, 어떤 경험담이 있었는지 (긍정 또는 부정)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의 언어실력이다.
 
면접을 준비할 때, 나는 최대한 많은 질문을 예상해서 (특히, 비슷한 듯 다른 질문일 때), 키워드를 나열하는 편이다. 물론 자기소개와 나의 경험담은 토시하나 틀리지 않게 전부 *완벽히* 외워간다. (뇌절로 인해 단어가 달라도 괜찮으니 나도 이걸 추천한다.) 
 
HR과의 미팅은 30분미만으로 끝났다. 조용한 방에서 티타임처럼 끝난 이 얼굴 도장용 면접은 주로 나의 이력이 사실인지 관한 여부였다. 조금 거슬린 게 있다면, 지원한 후보 중 나보다 경력이 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줄 때였는데,
 

알빠노?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너가 괜찮으면, 아마도 우린 너에게 일반 포지션을 제안할 수 있도?" 내겐 약간 우스운 말이었다. "그럼, 너흰 퍼포먼스보다 경력을 더 우선시 한다는 거야?" 라고 내가 되묻자, "그건 논의를 해 봐야겠지만, 너가 괜찮은 지를 묻는 거야."
 
내가 괜찮다고 대답을 하자, 아마 다음 면접은 매니저가 볼 거라고 귀뜸해 준다. 비교적 그래도 잘 이야기한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디렉터 면접이라고 한다. 일개 세일즈 사원 면접을 브랜드 총괄 디렉터가 본 다는게 곧바로 임원 면접을 보는 기분이 들어 어색했다. 면접은 역시나 1대1 면접. 이전에 면접을 본 같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아저씨, 나긋하고 젠틀한데... 뭔가 쎄하다. 자리에 앉으라는 말과 함께 그의 두 눈은 노트북에서 도무지 떨어지질 않는다. 잠시 흘러가는 침묵의 시간동안 나의 이력서를 쭉 들여다 보는게 분명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그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래... 여기서 일을 했다고?' 난 자기소개를 할 겨를도 없이, 'Oui' 라고 대답을 했고 대략 내가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설명을 보태었다. 나에게서 2-3문장을 듣던 그는 다시 침묵을 이어간다. 
 

Est-ce que tu as une question?
(질문 있어?)

뭐야 이 양반? 이렇게 면접을 끝내시겠다? 그의 지루한 듯, 멍한 듯한 눈빛은 날 향해 있었고, 나는 도무지 이 면접을 알 수가 없었다. 형식적으로라도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브랜드의 철학부터, 직원들이 가져야할 역량, 그리고 마레 플래그 쉽의 계획등을 물었다. 그는 간단명료하게 모든 질문에 한 문장미만의 어구로 답을 했고, 나는 더이상 이 면접의 가치를 잃었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Est-ce que vous avez une question?
(질문 있어요?)

 
'음.. 아니 없어. 없지. 넌 프랑스에 얼마나 오래 살았다고 했지?'  실질적으로 거주한 건 이제 2년차라고 답을 했다.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불어는 배운 듯한데, 난 사실 너의 불어 실력을 잘 몰라. 어느 레벨인지도 모르겠고, 다만 나는 너의 발음이 거슬려.' 

 
그의 솔직한 말에 멘탈이 살짝 흔들렸다. 지루했던 그의 눈에는 약간의 뭐랄까. 확신같은 게 서있었다. 만일 입사하면 난 일개 사원으로 일할 텐데, 여기서 변명이라는 게 소용도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여기에 좀 있고? 더 많이 대화하고 더 많이 말을 해야 해. 우리에게 불어는 정말 중요하거든'  나는 그의 말에 애써 동조하며 더 노력하겠노라 말을 했고, 그는 젠틀하시게도? 나를 아랫층 문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우리가 다시 널 부를 수도 있겠지. 그 기회가 된다면 매니저와 이야기하게 될 거야.' 그가 악수를 하며 건넨 말이었다. 기대하지 않은 면접이었지만 싱숭생숭했고 그와의 솔직하고 간결한 면담은 참으로 기묘했다. 이상했다라기보단 기묘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장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동료들에게 조금은 미안해졌다. 나 몰래 혼자 이곳에서 탈출을 하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면접을 두 차례나 보았지만 나의 마음이 불편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가능성을 보기 위해 지원했던 곳이었고, 아미가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주에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직 가보자고오>

 
 

이 회사가?

 
머릿속 기억 저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였고, 이름을 듣자 익숙한 이름이었다. 사실인 즉슨, 작년 3월 경 내가 파리 이곳 현지 법인에 이력서를 넣은 일이 있었다. 자세한 직무는 기억이 안나지만, 이벤트 총괄이었고 이력서를 넣자마자 내게 전화를 건 팀장은 <재무 회계> 관련된 직무인데 괜찮냐는 질문을 했다. (괜찮겠어요?ㅎㅎ)
 
전혀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었기에 난 그렇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녀는 굉장히 빠른 화법으로 (이렇게 말을 빨리하는 한국인도 드물다 정말...) 나의 이력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출신 학교와 전공을 보아하니 제안하는 게 괜찮을 것 같아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직무도 나름 잊고 있었던 나의 공대생... 역량을 살릴 기회이기도 했고, 어학적인 부분에 걸림돌이 없다면 (그들이 부담을 주지 않는다면) 나도 무척 해보고 싶은 직무인 것 같았다. 그런데 한 가지가 걸렸다. 그것은 바로 나의 체류증...(외노자는 이래서 웁니다 히히) 
 
체류증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피셜 면접을 보는 것은 이르지만,  만나보자는 그녀의 제안을 난 단번에 수락했다. (LI** IS GOOD) 그렇게 가는 길은 의외로? 험난했다.
 
갈아타는 1호선 지하철 운행이 급종료되는 1차 난관을 겪고 (파리 메트로 스릉해) RER로 타고 갈지 고민하던 중, 지도를 보니 도착 이후 걷는 시간이 20분을 넘는다. '이대로는 지각이다.' 불길한 예감이 든 즉시 나는 문자를 보냈고, 다행히 천천히 오라는 팀장의 문자에 안도감을 느끼며 난 다시 멘탈을 회복했다. 
 
1호선 지하철이 복구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지만, 다시 한번 상태를 확인하고자 돌아갔다. '어? 복구가 이미 되었다고?' 예상 복구 시간보다 30분 ㅎㅎㅎ이나 일찍 서비스 복구를 마친 지하철엔 다시 봇물같이 사람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하아 그래도 제시각에 도착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느끼며 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뭐랄까 성수동과 코엑스를 합쳐 놓은 듯한 건물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서 따라가도 건물로 가는 길이 끊어져 있다. 2차 난관.
 
몇 분여간을 왔다 갔다 지름길을 모색한 나는 빠른 포기를 하며 도로변으로 나와서 인도로 향했다. '이게 맞아?' 칼바람을 뚫고...목도리를 동여매며 눈물을 흘린 채 도착했다...SAFE
 
로비에 앉아서 기다리자, 통화를 했던 팀장이 마중을 나왔다. 간단히 인사를 마친 우리는 올라가서 회의실에 함께 들어갔다. 1분 쯤 지났을까, 곧 주재원으로 온 부서장이 왔고. 그렇게 나의 두 번째 탈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또 침묵이 흐른다. 
 

' 뭐라고 말 좀 해봐 2 ' 

 
 
나는 내가 뭘 잘 못 쓴건지, 잘 못했는지.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그분의 얼굴을 살폈다. 옆자리에 앉은 팀장이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어떠신 것 같으세요?'
 
내 이력서에서 딱히 흥미로울 만한 게 없어보였던 그가 물었다. '우리 회사는 잘 아실테고... 제품은 잘 알고 계신가요' 난 몇 가지 제품을 비롯해서 면접 준비를 할 때 공부한 신사업부에서 나온 제품들을 몇 가지 열거했다. 그러자 그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 너털 웃음을 지었다.
 
'지원하신 직무는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명장 분들 인솔하셔서 현지 교육 보조 그리고 통역까지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업무상 제품 QC도 하셔야 하는 경우도 있구요. 엑셀은 좀 잘 하시나요?' 
 
자. 이 대목에 집중. 아직 직무 정리도 제대로 논의가 안된 상태에서 이걸 다 누가? 내가? 혼자? 모두 떠맡으라는 부분인 건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리송한 나의 표정을 팀장은 눈치 채고, 중재를 해주신다. '이분께 아직 설명도 안되었는데, 차근히 말씀하시죠'  
 
머슥해진 주재원 분이 다시 이야기를 했다. '사실 교육이라는 게 늘상 있는 건 아니고요. 우리 서비스 부서에는 기본적으로 QC일손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원자 분이 코디네이팅 겸 제품 검사도 해보면서 지식도 늘리는 거지요' 
 
'어 그러니까, 정확히 어떤 제품을 진단하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되물었다. 그는 태연하게 전부다 해야 하지 않겠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주재원 분의 말이 답답했는지 팀장이 옆에서 말을 덧붙였다. 
 
'우린 창고가 따로 있어요. 주로 그곳에서 작업을 할 수도 있는데, 여기는 전 사업부를 총괄하는 곳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가전을 우리가 맡고 있거든요'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웃음을 곧 짓자, 팀장이 다시 주재원 분에게 말을 했다. '이분이 지금 체류증이 확실치는 않은데, 곧 해결되면 우리가 그때 인사과에 올려보는 게 좋겠어요.' 팀장은 보기와는 다르게 긍정적으로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물에 물탄 듯한 얼굴 도장이 끝났고, 난 다시 먼 길을 돌아갔다.
 
 
난 대체 어디로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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