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이라 믿었던 걸 내가 걸릴 줄이야.
그냥 나이 많은 사람들이 걸리는 줄만 알았는데.
그렇다. 얼마전 방년 서른 두살에 대상포진을 정통으로 맞아버린 썰 되시겠다.
불어로는 대상포진을 zona, 조나 (존나)라고 부르는데, 위대한 어감으로 보아 한국어 정식 명칭으로 정정해야 입에 붙을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친구부터 지인까지 포함해서 대상포진을 걸린 사람을 난 딱 두명 봤는데 (군대 선임, 첫 직장 부장님) 아무래도 흔치 않고, 내 증상과는 매우 달랐기에 충격이 더 컸다.
한창 업무에 적응할 시기였던 6월 마지막 주에 파리는 더위로 에펠탑이 휘어지니 마니 뉴스에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마도 그시기에 체력이 많이 떨어진 듯하다. (첫월급 잘받고 금융치료도 잘 됐는데 대체 왜...?)

증상은 먼저 이랬다. 정확히 오른쪽 신경을 파고 들었는데, 난 편두통으로 찾아왔다. 누가 한대 세게 친 것처럼. 측두부가 저려오자 난 자다가 내가 어디 떨어져서 부딪힌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찌릿함이 눈썹 부근과 정수리 오른쪽에 찾아오자 난 뭔가 잘못됨을 직감했다. 나의 주치의 챗지피티를 한시간단위로 채찍질하며 파악한 병명으로는 삼차신경통이었는데, 일시적인 스트레스라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대상포진은 주로 몸에 발현되니까.. 난 통증이 하루가 지나도 가시질 않자 신경통이 사실 단순 스트레스가 아니라 어떤 요인때문일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흔하다는 헤르페스도 없는 내가 헤르페스 뇌염일리는 없고 (연신 찾아본 결과 1형 헤르페스의 극악케이스를 이때 알았다) 포진이 발현되거나 발진이 일어난 것도 전혀 없었기에, 찜질과 셀프 두피 마사지로 버텨봤다.
사실 이건 림프절을 더 압박해서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도 있으니, 여러분은 그냥 당장 이상하다 싶으면 의사에게 가길 바란다.
나의 걱정이 지나기 전에, 이틀날 아침, 이마와 눈썹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고, (뭐야 누구냐 넌)

이놈과 어색한 첫만남을 하자마자, 그제서야 난 올게 왔구나 싶었다. 확신에 차며 (이와중에 병명을 알아낸 무친 희열) 부리나케 의사를 찾았다.ㅋㅋㅋㅋ
극초기에 발견했지만, 하필 금요일이라 주말을 지나면 상태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몰랐다. 난 잠시 업무를 시원하게 내팽겨치고 의사를 찾는데만 열중을 다했다.
참. 프랑스 의료체계는 정말 흥미롭다못해 가끔 나의 짜증을 유발하는데 탁월한데. 그건 바로
전문의에게 바로 진료를
받지 못한다.
무슨 말이냐고? 여기서 전문의를 만나려면 médecin généraliste, 즉 일반의 진찰을 가장 먼저 받아야 한다. (당연히 랑데부 잡아야하고요 ^오^)
일반의 소견서가 있어야 전문의 예약을 할 수 있고, 그외에도 X-ray, 초음파 검사 등 한국에서는 흔한 일반 병원 건물에서 당일 들러서 코스별로 검사받을 수 있는 것을 프랑스에서는 1주일은 넉넉히 잡고 (멘탈 폭발) 가야한다.
게다가 의사마다 보험처리 방식도 달라서 신중하게 골라야하는데, 이게 또 회사마다 취급하는 의료보험사도 다르기 때문에 자칫하면 이중으로 빠져나가는 출혈이 심해질 수 있다. (그냥 아프지마)

여하튼, 약 30분동안 당일 예약가능한 의사를 찾고 또 찾고, 걸리는 시간까지 계산한 끝에 겨우 의사를 찾았는데.
그분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찾은 한국인 의사였다. 다행히 점심시간대에 예약이 비어있었고, 매니저에게 의사를 만나러 가야한다고 하자, 그는 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묻지도 않고 너 원하는 만큼 시간쓰고 오란다 (찐쿨내)
그동안 프랑스 의사를 만나기전에 증상이 이러쿵 저러쿵 연신 번역기를 돌려가며 단어를 찾았던 나날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가고..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한국인
의사를 만날 생각에 들뜬 난 내가 환자인 것도 잊고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증상을 술술 설명했고, 내 이마 발진을 보자마자 말씀하신다.
어? 어? 이거 그거 아니에요? (네.. 맞아요)
불행중 다행은 대상포진은 발현이후 72시간내로 항바이러스제 복용이 원칙인데, 난 거의 몇시간만에 달려온데다 아직 통증도 없어서 그리 마음이 불안하진 않았다.
진통제도 몇개 챙겨주신다는 말에 안도한 나는 약국에서 약을 받자마자 물없이 꿀꺽 삼켰다.
회사로 복귀한 나는 의사에게 진단받은 사실과 별 문제 없을거라고 매니저에게 설명을 했는데 그땐 내가 대상포진을 너무 얕잡아보긴 했다.
약을 당일에 두번이나 먹고 일찍 잠들었음에도 바이러스는 최고속도로 번져가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출근이 어려웠고, 한달만에 난 병가를 신고했다 (유리몸)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도 매니저는 걱정 ㄴㄴ. 잘 쉬어. 라는 (찐이야 이분은) 짧은 격려만 문자로 보냈고. 나의 일주일 요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통증이 심하진 않았지만, 이것저것 찾아보니 오히려 진통제를 안먹고 참으면 이게 나중에 신경통이 된다는 말에 난 그제서야 처방받은 codeine을 복용했는데 이게 모르핀 성분이 약간 있어서, 병든 날 마냥 우울하진 않게 했다 (아, 이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고)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서 중간 점검은 해야할 것 같아서
의사 예약을 다시 했는데, 예약을 하자마자 전화가 왔다.
발신자 표시제한이 뜨는 걸 난 중학교 동창 장난전화이후로 못 봤기에 두번을 받지 않았는데, 세번째로 전화가 오자 이상하다싶어 받았다.
알고보니 한국인 의사분이 내게 콜을 해주신 거였다 (아아 당신은 이제 나의 슈바이처ㅠㅠ)
그분의 친절한 전화 상담이후 소독제와 재생크림처방전을 보내주셨는데, 바로 다음날 아침에 가서 받아온 재생크림이 특히 피부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5일치 약을 먹고 나니, 이제 딱지가 보이며 아물어가는 단계였고, 이제 여기서 과연 흉터가 생길지 초조해져만 갔다. 확실히 아직도 해당 부위 피부감각이 예전과 달라지는게 느껴졌다. (마취가 덜 풀린 느낌?)
그래도 바람만 불거나 스치기만 해도 통증이 온다는 무서운 후기와는 다르게, 크게 신경이 손상된거 같지 않아 다행이었다. 행여나 눈썹이 빠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짱구눈썹은 제법 튼튼했고 자외선차단과 크림에 신중을 기울였다.
딱지가 생기니 이젠 통증이 아니라 가려움과의 전쟁이었는데, 예전 편두통도 이제는 간지러움으로 바뀌면서 올라오는게 참 신기하기도 했다.

병가가 끝나자 사무실 동료들은 안부를 물으며, 젊은 나이에 그런걸 걸렸다며 안쓰러워 하시기도 하셨다.
피부는 이제 거의 아물었으나, 이마 한쪽 감각은 아직 메롱상태인데, 이런 신경절 후유증이 수개월넘게 걸린다고 하니, 일단 흉터만 안생기게 선크림 잘발라주는 쪽으로 신경쓰기로 했다.
여기서도 몇몇 현지 친구들은 대상포진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더라.
어렸을 때 걸린 수두바이러스는 잠식되어있고 이게 20년이고 30년이고 수십년 뒤에 발현되는게 대상포진이랜다. (한번 걸리면 잘 안걸린다는데.. 어느 말이 맞는지는 더 살아봐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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